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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보존 (Historic Preservation)/도시재생 (Urban Regeneration)

복제와 재현의 시대에 ‘역사’가 소비되는 방식 (Part I)- 중국 산자이(Shanzhai, 山寨) 문화의 진화

China’s Consuming Heritage-From Entertaining Urban Landscape to “Duplitecture”  

 

"Design today becomes as easy as Photoshop, even on the scale of a city." -Rem Koolhaas
"오늘날 디자인은 포토샵으로 모방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심지어 도시 규모의 디자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건축가 램 쿨하스

 

2016년 고인이 된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베이징의 오피스 건물 디자인이 충칭의 개발업자에 의해 도용되었다는 소식은 2013년 건축계에 적잖은 파장을 낳았습니다. 디자인의 도용이라는 사실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녀의 디자인을 모방한 39층 높이의 건물이 원 건물보다 더 일찍 완공될지도 모른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였습니다. 원본보다 가짜가 더 빨리 건설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서구 언론들은 건축가의 지적재산권보다는 오히려 대담해진 중국의 복제 문화에 주목했습니다. 과거 정부의 묵인하에 일부 유명 가전, 럭셔리 브랜드 의류 및 액세서리 등을 암암리에 모조해서 팔던 2000년 이전 시절과 확연히 달라진 중국의 스케일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좌) 동강(Chongging)의 메이쿠안 22세기 건물 조감도 (The Meiquan 22nd Century) (우) 자하 하디드의 왕징 소호 프로젝트(Wangjing SOHO project)

 
사실 중국이 서양의 유명 건물의 디자인을 도용해서 건축계에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근대건축의 거장 중 한 명인 프랑스 출신 건축가 르 꼬르뷔제가 설계한 롱샹 교회 (Ronchamp Chapel)도 1994년 정조우(Zhengzhou)에 복제 건물이 등장했지만 르 꼬르뷔제 재단(Foundation Le Corbusier)의 요청으로 철거되는 일도 있었고, 이후 대규모 테마공원과 관광지를 중심으로 서양 문화권에 있는 역사적인 기념물이나 유명 건물들의 복제와 도용이 1990년대 말부터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2000년대 초부터는 서양의 마을이나 도시 전체를 본 따서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모방 프로젝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미디어들이 앞다투어 탐사보도를 이어가면서 암암리에 묵인되던 산발적으로 보였던 중국의 모방 문화는 하나의 ‘이상한(weird)’ 사회적 현상으로 전 세계적인 조명을 받게 됩니다.

 

 

(좌) 르꼬르 뷔제의 롱샹교회 전경 © Cara Hyde-Basso, (우) 정조우(Zhengzhou)에 건설된 롱샹교회 짝퉁 건물, ©CAIP

오늘은 중국의 서양 도시 복제 현상의 시초가 되었던 상하이 신도시 계획을 사례로 중국 사회에 만연한 복제 현상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선과 그 이면에 감춰있는 사회-문화적인 의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문화강국 중국의 산자이 (Shanzhai, 山寨) 문화 (In Search of Authentic Fake)

우리가 흔히 중국 하면 연상되는 전통적인 이미지는 오랜 역사, 광활한 영토와 다민족으로 구성된 엄청난 인구, 한자문화권이 시초, 만리장성 등 거대한 규모의 역사자원, 소련의 붕괴 이후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시스템 등이 있습니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한 2000년대로 넘어오게 되면 미국을 압도하는 세계 제조업의 산실의 이미지인 ‘Made in China’도 떠오릅니다. 역사 보존학 적으로 살펴봐도 중국의 위상은 단연 압도적입니다. 중국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황하문명과 56개나 되는 소수민족의 다양한 문화를 보유한고 있는 문화 대국입니다.  2019년 세계문화유산 통계를 보면 단일 국가로는 이태리와 함께 가장 많은 55 개의 세계문화유산 (문화유산 37, 자연유산 14, 혼합 유산 4)과 잠정 등재 후보 (60)을 보유하고 있고, 수치상으로는 한국(14)보다 3배 정도 많고, 유럽의 역사 보존 선진국인 프랑스(45), 독일(46), 영국(32) 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중국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 덕분에 관광산업은 지난 10년간 인상적인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1960-2017년까지 중국의 GDP 변화를 보여주는 도표, World Bank; McKinsey Global Institute Analysis

  

그런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강국의 모습과 반대로 부정적인 이미지들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소위 ‘짝퉁’으로 표현되는 ‘가짜(fake)’, ‘모조(forgery)’, ‘모방(copy)’, ‘낮은 품질’ 등을 의미하는 ‘산자이’라고 이름 붙여진 중국의 모방 문화가 그것입니다. 사전적으로는 ‘산에 돌이나 목책(木柵) 따위를 빙 둘러 만든 진터’ 혹은 산 도둑이 웅거(雄據)하는 소굴’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1990년대 말부터 광둥성의 짝퉁 휴대폰 생산공장을 가리키는 말로 중국의 많은 영세 공장에서 정부 감시를 피해 원조 제조사의 휴대폰을 모방한 ‘산자이 휴대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정품보다 저렴한 짝퉁 휴대폰은 신흥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중국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짝퉁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후 산자이는 ‘중국산 모조품’ 전체를 상징하는 일종의 집합 명사로 의미가 확대되었습니다.

 

중국의 상자이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들, medium.com

 

스카이시티(Sky City)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저장성 항주 외곽에 위치한 티안 두 청(天都城)은 서양 언론에서 가장 빈번하게 중국의 모방 문화를 다룰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입니다. 인구 10,000명을 수용할 목적으로 2007년에 분양이 시작된 이 위성도시는 ‘중국의 파리(Paris)’를 표방하며 108 미터 규모의 에펠탑을 모방한 구조물, 31 평방 킬로미터 규모의 파리 풍 주거 단지, 유럽식으로 장식된 분수들로 도시 경관을 조성했습니다. 개발업자의 예측과 달리 가짜의 이미지로 가득한 이 도시는 2013년까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겨우 2천여 명의 거주민들만 거주하는 반쪽자리 텅 빈 도시로 전락하게 됩니다.  

 

파리를 모방해 건설한 티안 두 청 시내 전경, http://myredstar.com/


역사 보존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또 다른 사례는 2012년, 오스트리아의 세계문화유산 마을인 할 스타트(Halstatt)를 모사해서 조성된 할 스타트-차이나(Hallstatt-China) 주거단지입니다. 중국 최대 광물 무역회사인 Minetals Trade LLC. 가 9억 4천만 달러를 투자해서 실제 마을과 동일한 크기로 재현한 테마 도시로 서구 도시의 무분별한 복제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과 비영리단체에 의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에 진정이 접수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할 스타트의 시장인 알렉산더 슐츠(Alexander Scheutz)와 지역 주민들이 완공식에 참석 차 중국을 방문하고, 두 도시 간 문화교류(Cultural Exchange)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스웨덴의 할스타트 마을 (좌)과 중국에 재현된 할스타트 마을 전경 (우), Baidu

 

짝퉁 도시의 시대를 연 상하이(Shanghai)의 “하나의 도시, 아홉 개의 소도시” 전략 (One City, Nine Towns)

마오쩌둥의 뒤를 이은 덩샤오핑의 1978년 개혁개방(改革開放) 정책을 시작으로, 1979년 미-중 간 외교관계가 회복되면서 중국은 오랜 기간 유지했었던 폐쇄적인 공산 경제를 청산하고 외국의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개혁개방 체제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임대료 덕분에 막대한 해외 자본이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제10차 (2001-2005) 5년 계획에서 중국 정부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야기된 도시와 농촌 간 경제 격차를 해소할 목적으로 ‘도시화 촉진’을 위한 정책을 발표하게 되면서 대륙 전역에서 신도시 (New Town) 개발 열풍이 일어나게 됩니다.

 

허난성 시골마을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 전경, http://www.chinatoday.com.cn/

 

상하이에서 시행된 “하나의 도시 아홉 개의 소도시” 사업이 발표된 시점도 이 무렵입니다. 이 사업은 2020까지 100만 명의 인구를 교외로 분산시킬 목적으로 제안된 위성도시 전략사업으로, 영국, 미국, 러시아, 스페인, 스웨덴,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이태리 등 서구 도시와 경관을 테마로 하는 9개의 위성 신도시 건설을 공개입찰을 통해 건설하겠다는 시 정부의 야심 찬 미래 전략이었습니다. 많은 아시아 개발도상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새 천년을 계기로 세계 일류도시로 도약할 발판이 절실했던 상하이 정부는 세계적인 테마를 모티브로 하는 위성 신도시 개발을 통해 원도심에 집중해 있는 인구를 분산시키고, 여전히 미개발 중인 외곽의 농업지역을 활용하여 현대화된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중국 공산당에 의해 제시된 국가적 사업의 비전도 동시에 성공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일석이조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상하이 정부의 "하나의 도시, 아홈개의 소도시" 전략을 요약 정리한 포스터, Francesca Piazzoni

 

2001년에 발표된 ‘2020년 도시개발 계획’에 따르면 상하이는 (1) 시경계 안쪽 지역(city proper), (2) 3개의 주요 도시, (3) 일반 신도시(총 11개), (4) 22개의 시골 거점 도시, (5) 일반 시골 도시 등 5개의 용도 지구 조성을 목표로 계획이 수립되어 있습니다.  ‘한 개의 도시, 9개의 주거지’를 주관한 상하이 도시 계획 위원회는 세 개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송강지구를 지정하고, 총 11개의 일반 신도시 모델 중  9개를 사양식 테마가 있는 주거용 위성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추진했고, 이는 교외에 이미 건설되어 있는 위성 도시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의 농지를 매입하여 추가적인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100여 년 전에 패트릭 게즈(Patrick Geddes)가 주장했던 다 중심적 광역도시권(Conurbation)을 조성하여 상하이 도심에 집중되어 있던 산업시설과 인구를 교외로 분산시키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성공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 상하이 시 정부와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 정부들은 토지 소유주들과 민간 개발업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파격적 지원을 약속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도시 사업부지는 대다수 농경지였는데, 시의 정책에 협조적으로 토지를 판매한 농민들에게는 인근 지역의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보상과 더불어 새로 조성될 위성 도시의 시민권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또한 참여를 희망하는 민간 개발업자들에게는 세제혜택과 더불어 해당 지역의 은행들로 하여금 낮은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게 됩니다. 


경제발전을 위한 과거 기억의 소환 (Selective Use of Collective Memories)

 

"China's copycat and 'duplitecture' enthusiasts have chosen a very specific range of styles and countries to copy…The cities and landmarks we see copied over and over again in China are those associated with countries and cultures that oftentimes command a lot of influence and often a lot of wealth, "

“중국의 짝퉁 건축 열광자들은 복제를 할 때 매우 구체적인 양식과 국가들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해 왔습니다… 매년 반복해서 복제되고 있는 도시들과 랜드마크들은 과거 중국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거나 매우 부강했던 나라 및 문화권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상하이 정부가 새롭게 조성하는 위성 신도시들을 굳이 서구의 도시와 경관을 바탕으로 테마로 결정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관련된 역사에 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세기 동안 상하이는 중국과의 무역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들에 의해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이 교차했던 대표적인 항구 도시입니다. 청나라 왕실과 인민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무역상들은 공산당이 집권하게 되는 1950년대까지 상하이를 거점으로 중국과의 교역을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상하이의 일부 지역이 영국 조계지, 미국 대표부, 프랑스 주거지 등 국제문화를 수용한 주거지역으로 개발/활용되면서 이국적인 서양식 도시 계획과 건축 양식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경제가 급격한 성장을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이런 서양식 건물들은 허물어지고 국적불명의 초고층 구조물들로 교체되었지만, 현재까지도 고풍스러운 영국 은행들과 호텔들이 한때 영국 영사관이 있었던 와이탄 (the Bund) 지역을 중심으로 다수 남아있습니다.

 

아르데코 (Art Deco) 양식의 서양풍 건물로 가득찬 상하이 와이탄 (Bund) 지구 전경사진, © DuKai photographer / Getty Images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상하이 정부는 점차 서양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일환으로 과거 국제 무역의 거점이었던 도시의 과거 역사를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발표된 ‘하나의 도시, 아홉 개의 소도시’ 개발 계획도 이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결정으로, 다만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상하이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반 강제적 서양풍 도시 개발과 달리 이 사업은 상하이 정부 스스로가 ‘선진적’ 유럽과 서양 도시를 모델로 설정하고 위성 신도시의 건설을 주도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던 것입니다. 상하이 계획 위원회가 구상하는 도시 발전의 비전은 낙후된 농촌지역 개발에 만연해 있던 단조로운 개발모델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질서와 정체성을 건설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남아있던 서양 열강 국가들의 도시를 모방한 신도시들을 조성함으로써 과거 국제도시로서 명성을 재현하고 새 천년을 기점으로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하려는 시도였던 것입니다.

 

후통 경제 지구 (District of Pudong)의 1987년(좌)과 2013년 (우) 모습, www.theatlantic.com

과연 상하이의 위성 신도시들은 시 정부의 기대대로 잘 진행되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복제와 재현의 시대에 ‘역사’가 소비되는 방식 (Part II)-서구 풍 주택 전시장이 된 상하이 신도시 사업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복제와 재현의 시대에 '역사'가 소비되는 방식 (Part I)-중국 산자이(Shanzhai, 山寨) 문화의 진화 상하이의 '하나의 도시, 아홉 개의 소도시 (One City, Nine Towns)' 사업은 기존에 계획되었던 9개의 도시 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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