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와 재현의 시대에 '역사'가 소비되는 방식 (Part I)-중국 산자이(Shanzhai, 山寨) 문화의 진화
복제와 재현의 시대에 ‘역사’가 소비되는 방식 (Part I)- 중국 산자이(Shanzhai, 山寨) 문화의 진화
China’s Consuming Heritage-From Entertaining Urban Landscape to “Duplitecture” "Design today becomes as easy as Photoshop, even on the scale of a city." -Rem Koolhaas "오늘날 디자..
historic-preservation.tistory.com
상하이의 '하나의 도시, 아홉 개의 소도시 (One City, Nine Towns)' 사업은 기존에 계획되었던 9개의 도시 중 8 지역이 실제로 공사가 완료되었지만, 조성된 신도시들 중 어느 곳도 아직까지 성공적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거대한 신도시 전체 면적에서 불과 3-4 블록 정도의 제한된 공간에 조성된 서양식 테마 주거지들은 거주자들의 생활 습성에 대한 면밀한 연구 없이 단순히 서양 도시의 외관을 모사에 급급했으며, 질 낮은 건축 완성도로 인해 사람들에게 외면받았습니다. 상하이의 중산층이 감당할 수 없는 높은 분양가와 투기를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이 쇄도하면서 도시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정도의 상주인구 유치에 한계가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지역 내 상업지역의 침체로 이어졌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상하이 도심에서 너무 먼 위치에 신도시들이 건설되었다는 점입니다. 최장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는 상하이 도심에서 통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유치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에는 상하이 계획 위원회를 앞세워 야심 차게 사업을 추진했던 상하이 전 시장 첸 리앙유(Chen Liangyu)가 뇌물수수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면서, 상하이의 위성 도시 건설 프로젝트는 문화사대주의 (Xenocentricism)라는 국내외 학자들의 비판과 비판적인 서구 언론들에 의해 문화유산의 강국이라는 이미지마저 “복제의 왕국(The Copy Kingdom)”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으며 차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송강 탬즈 신도시 (The British New Town, 2006)
Welcome to Thames Town. Taste authentic British style of small town. Enjoy sunlight, enjoy nature, enjoy your life & holiday. Dreaming of Britain, Live in Thames Town”-On the Advertising Sign at Thames Town-
“탬즈 타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국 소도시의 진정한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햇살, 자연, 그리고 당신의 인생과 휴가를 즐기세요. 영국을 꿈꾸신다면 탬즈타운에 거주하세요.”-탬즈 타운 광고판 문구
상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송강지구에 들어선 탬즈 타운은 2006년에 완공된 신도시로 영국 런던을 모티브로 하여 조성되었습니다. 영국 소재 다국적 건설업체인 아트킨스(Atkins)가 전체 도시를 계획하고 상해 신도시 건설개발(Shanghai Songjiang New City Construction and Development)과 상해 헌거 부동산(Shanghai Henghe Real Estat)이 공동으로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1평방 킬로미터의 면적에 인구 10,000을 수용하기 위해 조성된 인공도시로 총 공사비 3천3백만 달러가 투자되었고, 영국식 마켓타운을 모방해 자갈이 깔린 도로에는 영국에서 직수입한 가로등도 설치하는 등 영국의 도시 경관을 재현하여 조성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의 전통 튜터 양식의 건물들, 브리스톨(Bristol) 지역의 고딕 양식 성당을 모방하여 만든 성당, 빅토리안 양식의 테라스와 건물 모시리에 위치한 커피숍뿐만 아니라 런던의 상징인 빨간색 전화부스, 해리포터 동상,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흉상 등 시행사 측은 영국을 연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도 설치했습니다.
탬즈 타운의 분양률은 다른 위성도시에 비해 비교적 무난하다는 평가받았지만, 분양 당시 중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으로 기대와는 달리 중산층의 수요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대다수의 분양 물량은 부유층에 의해 투자용도나 세컨드 주택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팔리면서 그야말로 ‘주인은 있지만 주민은 없는 유령도시’로 전락했으며, 다수의 주택소유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여전히 상하이 도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송강 지구 도시 계획 총괄 건축가 멕케이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원래는 “유럽의 진정성을 존중하면서도 고품격의 유럽풍 주거단지를 계획했지만…(실제로 개발업자들에 의해 재현된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조품”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도시에 대한 여론의 싸늘한 비판을 피해 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팅 독일 신도시 (The German New Town, 2007)
"The Chinese didn't want a German town. They just wanted a town that looks like a German town."-Albert Speer in the interview with Spiegel International
“중국인들은 독일 타운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독일 타운처럼 보이는 주거지를 원했을 뿐이죠”-알버트 스피어, 스피겔 인터내셔널과의 인터뷰 발언
독일 프랑크 푸르트(Frankfurt)의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Albert Speer)가 계획한 안팅(Anting)은 원래 2008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본 계획의 일부만 2011년에 완공이 된 사례로 독일을 비롯한 서구 언론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상해에서 서쪽 3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 안팅은 중국-독일 합자 투자회사인 상하이 폭스바겐(Shanghai Volkswagen)이 위치한 지역으로 독일 자동차 생산의 전초기지로써 이미지를 강조하고 첨단의 산업도시를 목표로 신도시 계획이 추진되었습니다. 여기에 조성된 안팅 독일 타운은 인근 공업단지와 연계하여 원래 25,000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되었지만, 중심 도시인 안팅과 단절된 불편한 위치와 접근성으로 인해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2014년까지 절반에도 못 미치는 7천여 명만 입주하게 됩니다. 특히 아름다운 전망에 조성된 독일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아파트들은 대량으로 미분양 사태를 맞게 되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인들이 주거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수적인 요건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주택 디자인이 원인이었습니다.
대부분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주택은 북향이나 남향인 것에 비해 신축 아파트들은 동향 혹은 서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주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는 갖추지 못한 채 독일 식 첨탑이 뾰족한 교회와 생경 맞은 괴테(Goethe)와 실러(Schiller)의 동상부터 조성되는 실용적이지 못한 도시계획과 시행사의 무책임한 관리체계도 한 몫했습니다. 인근 폭스바겐 공장 노동자들 덕분에 상가는 어느 정도 활성화되어 있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서양식 패스트푸드 가게들이 주변 하천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기 시작하면서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거동의 경우 낮은 상주인구 비율로 인해 점심시간 이후부터 밤 시간까지 거리가 텅 비어 있는 유령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책임 건축가였던 알버트 스피어는 다시는 이런 식의 신도시 개발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루 오디 안 스웨덴 신도시 (The Swedish New Town, 2004)
“If you live in Luodian you don’t need to go abroad,” -Liu Jianguo, vice-general manager of Shanghai Golden Luodian Development
“루 오디 안에 사신다면 해외를 여행할 필요가 없습니다”-리우 지안구오, 상하이 골든 루 오디 안 개발회사
루 오디 안(Luodian)에 건설된 신도시는 스웨덴 건축회사 스웨코(Sweco)가 스톡홀름 북쪽에 있는 유서 깊은 마을 시그 투나(Sigtuna)를 모방해서 2004년에 조성된 신도시입니다. 참고로 시그 투나는 인구 8천 명 정도가 거주하는 시골 도시로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들과 아름다운 중세 역사경관으로 유명한 여름 휴양지입니다. 소규모 인구가 사는 스웨덴의 시그 투나와는 다르게 전체 6.8 평방 킬로미터 규모의 루 오디 안 시그 투나 주거단지는 3만에서 5만 명 정도의 중소 도시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스웨덴 양식을 본뜬 가옥, 상점, 성곽 건축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유명한 말라렌(Mälaren) 호수를 본뜬 인공호수 멜 일란(Meilan) 호수와 스웨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아이스랜드(Iceland)의 국회를 모방한 건축물도 있습니다.
상하이 북쪽에 위치한 이 북유럽 스타일의 신도시에서 흥미로운 점은 상하이의 ‘하나의 도시, 9개의 주거지’ 정책으로 건설된 다른 신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많은 상가의 공실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상업 지역들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는 점입니다. 루 오디 안은 중국에 건설된 서양식 테마도시나 마을들도 사업자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유일한 사례로, 도심에 있는 음식점들은 손님들로 붐비고 주변에 조성된 인공호수 주변으로 산책 나온 많은 시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도시가 유동인구를 유치하는 데 성공한 이유는 중국식으로 운영되는 사업 시스템이 큰 이유입니다.
호수가 주변에 위치한 스웨덴 풍의 건물에 입주한 음식점들과 상점들은 서구적인 음식과 상품 대신 중국음식과 중국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합니다. 결국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던 요인은 스웨덴의 경관과 건물들은 단순히 먹고, 사고, 마시는 것에 추가적인 눈요기거리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 활성화되어 있는 상업지구와 달리 저조한 분양률을 보이고 있는 주거지역은 가로등이 켜진 지역을 찾기 힘들 정도로 여전히 적막하기만 합니다. 주거 단지에 있는 유럽식 빌라의 최고가는 73만 달러 정도이고 아파트의 경우 8만 5천 달러를 웃돌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1년 평균 연봉이 6천 달라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상하이의 스웨덴 풍으로 조성된 이곳에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가오 칭하오 네델란드 신도시 (The Holland New Town)
상하이 푸동 신지구에 위치한 가오 칭하오는 남송시대에 조성된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이곳에 1 평방 킬로미터 규모로 조성된 네덜란드 신도시는 네덜란드 건축회사인 쿠이퍼 콤파 그 논스(Kuiper Compagnons)와 아틀리에 더치(Atelier Dutch)가 공동으로 계획하고 이후 중국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마을에는 네덜란드 해양 박물관(Netherlands Maritime Museim), 암스테르담 소재 비젠 코프 (Bijenkorf) 백화점, 부르 부르크(Voorburg)에 있는 호프윅(Hofwijck) 맨션을 어설프게 흉내 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결혼사진을 찍으려는 신혼부부들이 자주 찾는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는 화학공장들과 자유 공업단지 사이에 위치한 부지에 설치되어있으며, 네덜란드의 중부 도시 아메르스푸르트를 1:1 스케일로 옮겨 놓은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이 지구의 중심지인 네덜란드 문화의 거리(Holland Culture Street)로 네덜란드 전통양식을 모방한 4층 건물들과 그 사이에 조성된 그늘진 가로수 길이 있습니다. 10만 달러에 육박하는 높은 아파트 분양가와 오염된 대기로 사람들에게 외면받으면서, 상하이의 메트로가 통과하는 편리한 교통과 푸동 지구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주거동과 상가동 모두 거의 비어 있는 유령의 도시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브리자 시타 디 푸지 안 (The Italian New Town, )
“The residents here will be away from the stifling urban problems and will lead a carefree life in a natural and harmonious atmosphere.”
“주민들은 답답한 도시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조화된 환경에서 근신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브리자 시타 디 푸지앙(Breeza Citta di Pujiang)은 상하이가 2010년 세계엑스포를 위해 지역 전체를 재개발하는 도시 계획의 일부로 진행된 프로젝트로 50만 명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조성한 곳입니다. 원래 수로가 지나는 농경지였던 곳을 이태리 건축회사인 그레고 티 아소 시아 티(Gregotti Associati)에 의뢰하여 근대 이태리 도시경관(Italian città)을 모방해서 계획된 신도시로, 15만 평방 킬로미터 대지에 인구 8만 명을 수용할 목적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서구풍의 건축과 경관을 모방했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건축가는 이태리의 근대 도시를 모델로 도시를 계획했습니다. 하이파워-OCT 투자회사에 의해 이태리의 빌라, 궁전, 종탑이 있는 광장 등을 모사해서 건설되었고 이후에 7 평방킬로미터 면적이 재개발되었습니다.
근대 이태리 도시의 재현을 위해 건축가는 이태리 도시의 전형적인 격자 패턴을 도입하고,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조화되도록 기존에 있던 운하 체계를 재단 장하고, 나무로 조성된 보행자 전용 도로와 자전거 전용도로는 물론 수로 위를 연결하는 교각들을 설치했습니다. 이태리의 팔라조를 모방한 주거용 아파트들은 소규모 인공 호수 근처에 조성되었고, 60 평방 킬로미터 규모로 조성된 주변 경관을 고려해서 대부분의 건물들은 4층 이하로 설계되었습니다. 가장 큰 규모의 신도시 개발답게 주거지역, 상업지역, 대규모 공공건물, 운동시설은 물론 공공 공간, 강변 산책로 및 광장, 도시를 관통하는 공원도 조성되었지만, 당초의 기대와 달리 인구는 겨우 약 5만 명을 웃도는 정도이며, 상하이 도심과 불과 16킬로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는 거리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30만 달러를 웃도는 비싼 아파트 가격 때문에 대부분 부유층들의 투기 목적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다수의 신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유령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유치한 모방 (Fake)과 문화 우월감(Triumphalism) 사이의 어느 지점
서구의 미디어와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The more one is able to leave one’s cultural home, the more easily is one able to judge it, and the whole world as well, with the spiritual detachment and generosity necessary for true vision. The more easily, too, does one assess oneself and alien cultures with the same combination of intimacy and distance.”― Edward W. Said, Orientalism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문화권에서 더 멀리 떠날수록, 진정한 비전에 필요한 영감과 관대함을 가지고 자신이 속한 문화와 온 세상에 관해 더 용이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적절한 친밀함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 스스로와 타 문화에 대한 평가도 더 용이해집니다.”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우선 다수의 서구 미디어의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과 서구 문화권의 역사자원에 대한 무분별한 도용이라는 관점입니다. 보존 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역사자원의 소유권에 관한 문제로 특정 지역의 전통문화가 다른 지역적 맥락에서는 진정성(authenticity)을 잃게 되며, 가치평가의 기준이 되는 완전성(integrity)도 의심받게 된다는 전형적인 서양의 원형에 대한 철학적 믿음이 깊이 깔려 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서구 문화권의 아시아를 포함한 비 서구문화권 국가들에 대한 편견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포함한 비 서구권 문명을 정체적이고 발전이 덜 된 상태로 규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이성적’, ‘합리적’, ‘우월적’ 존재로 부각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상하이의 ‘하나의 도시, 아홉개의 소도시’ 위성 신도시 사업을 바라보는 서구 언론들과 학자들의 시각 역시 큰 틀에서 보자면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 낸 기사의 헤드라인은 ‘모방(Fake)’, ‘짝퉁(Copycat)’, ‘모조품(Knock-off)’, ‘복제품(Replica)’이라는 표현을 통해 상하이의 위성 신도시 사업을 평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원본’ 문화에 대한 제국주의적 자부심과 서양의 건축과 도시 문화를 무조건 적으로 추종하면서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여기는 중국 공무원들과 개발업자들의 천박한 상술에 대한 냉소와 조롱도 감춰져 있습니다. 이런 시각은 서구 사회가 지향하는 미학적 가치인 진정성과 완전성을 설명하는 몇 가지 요소- 장소적 성격(setting), 재료(material), 구축 기술(workmanship), 미학적 혹은 역사적 성격 (Feeling), 객관적인 관점에서 관찰될 수 있는 중요성 (Association) 등을 적용해 볼 때 서양풍 테마 신도시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평가할 가치가 없는 ‘가짜(fake)’라는 게 주장의 핵심입니다.
“The ancient parallels for these copycat projects suggest that they are not mere follies, but monumental assertions of China's global primacy.”
“(요즘 발생하고 있는 중국의) 복제 프로젝트와 유사한 중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면 복제 프로젝트들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중국이 쟁취한 국제적인 위상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주장이다”
이에 반해 일부 학자들은 짝퉁 도시의 출현에 대해 중국의 서양문화에 대한 우월감이 표출된 단적인 사례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1990년대 이후 급성장한 경제적 성장 덕분에 축적된 부와 농업경제 위주의 산업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범 국가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시행된 도시화 정책과 이로 인해 촉발된 도시개발과 부동산 광풍은 사회주의 통제 경제체제에서 억압되어 있던 중국 인민들에게 주택소유는 사회적인 성공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화 대혁명 이후 전통은 낡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유럽을 비롯한 선진적 서양 문물에 대한 인민들의 동경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문화권의 유명 건축과 도시에 대한 비현실적 환상과 광적인 집착으로 표출되었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고고학자 잭 칼슨(Jack Carlson)은 해외정책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의 무 작위적인 건축문화의 복제는 뻔뻔한 상업적 차용으로 보기보다는 그 보다 더 큰 다른 이유에 근거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중국의 유명한 사학자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기록을 예로 들면서, 진나라의 시황제가 고대 중국의 통일전쟁 과정에서 정복한 국가들의 궁전과 왕실 건물들을 수도인 함양 북쪽 경사지에 재건하여 승전을 기념했다는 역사적인 기록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중국의 복제 문화의 기원을 진나라까지 가는 것은 좀 과하다 싶지만, 만약 이것이 정말 ‘승리주의(triumphalism)’를 지향하는 중국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가정해 보면, 수백 년에 걸쳐 조성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역사 자산을 놀랍도록 짧은 기간에 대규모의 자본을 투자해서 재현함으로써 과거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세계만방에 중국의 잠재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We live in a world where there is more and more information, and less and less meaning” -Jean Baudrillard
“우리는 점점 더 늘어가는 정보와 갈수록 의미가 사라져 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진 보드리야르
역사를 보존하는 활동에서 여전히 강력한 잣대인 진짜(authentic)와 가짜(fake)의 논쟁과는 별개로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복잡하지만 명료한 철학적 주장은 상하이의 서양풍 위성 신도시 개발사업과 관련해서 복제와 재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짜(복사물)가 진짜(원본)를 대신하고 있다'는 그의 이론은 건축과 도시에서 보이는 중국의 산짜이 문화와 중국인들의 역사를 소비하는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소비사회에서 사물은 기호와 이미지로 그 가치가 결정된다는 그의 주장대로, 중국인들에게 재현된 유럽의 건축과 도시는 진정성과 완전성의 기준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구축된 유산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빈부적 사회 계층을 구분 짓고, 내 것과 다른 독특한 이미지와 감성을 발산할 수 있으며, 사회적인 지위를 표시하는 그야말로 ‘원본이 없는 이미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복제된 유럽풍 건축과 도시는 부와 성공의 ‘상징’이라는 이미지로 포장된, 그래서 낡은 전통 건축이나 농경시대의 마을과는 다른 ‘교환 가치 (Exchange Value)’를 지닌 ‘상품’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중국 다운 거대한 스케일의 짝퉁 도시는 ‘유치한 흉내나 모방’도 ‘문화적 우월감’도 아닌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상징적인 교환가치(Symbolic Exchange)가 재현된 ‘이미지’이자 사회주의 형 자본주의가 낳은 ‘기호 가치 (Sign value)’인 셈입니다.
서양 테마 뉴타운의 새로운 변화 (Chinese Adaptation to the Western Themed New Towns)
"Fine art works should be like sunshine from the blue sky and the breeze in spring that will inspire minds, warm hearts, cultivate taste and clean up undesirable work styles, "- President Xi Jinping at the 2014 literary symposium in Beijing
“미술작품은 (우리에게) 영감과 따뜻한 마음을 불어넣고, 취향을 기르며, 바람직하지 않은 작업 스타일을 새롭게 해주는 봄에 부는 산들바람과 푸른 하늘의 햇살 같은 것이어야 한다.” -2014년 베이징 문학 심포지엄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
서구풍 도시건설의 광풍이 불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수의 신도시들은 초창기 미분양과 인구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법 안정적인 도시 근교의 일상적인 주거지로 정착되어 가는 모습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업 초기에 구상했던 ‘완벽한’ 서양풍 도시의 재현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중국식 도시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정착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업 초기에는 각 신도시의 테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업들과 행위들이 일절 금지되었지만, 해당 개발업체들이 지역 정서를 포용하고 주민들의 삶의 필요와 질을 높이는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적용했던 건물 용도와 공간 사용이 주민들의 생활습관과 요구사항에 맞게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탬즈타운에서도 중국식 라면과 버블 티를 판매하는 음식점, 전도유망한 국내 디자이너의 옷을 파는 의상실, 중국 식료품 가게 등 주민들의 실질적인 생활에 필요한 상점들이 영국풍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를 대신해 입주하고 있고, 주민들은 여느 상하이 주택처럼 언제든 주택의 베란다와 공원의 양지바른 곳에 빨래를 말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상하이 도심과 각 신도시를 연결하는 교통 편들도 늘어나서 통근 시 불편함도 덜게 되어 상하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일상 주거지로 손색없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서양풍 건물들과 이색적 경관은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많은 신혼부부들의 웨딩 사진 촬영지로 활용되면서 지역 상권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20년이 지난 상하이 계획 위원회의 위성 신도시 조성 사업의 성공 여부는 아직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일단 지어 놓으면 인구가 몰릴 것 (built it and they will come)이라는 과거 개발 시대의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지역 사회의 문화적 감성과 동떨어진 도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지속 가능한 삶터가 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 중국의 산자이 문화로 시작되었던 작고 영세 모방꾼들이 시간이 지나 창조적 동력으로 탈바꿈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목격해 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더욱 세심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이웃나라 중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천박한’ 모방에 대한 서구적 진정성에 근거한 비난이 아니라, 다양한 서양풍의 짝퉁 건축과 도시들이 점차 중국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타협하고 토착적 삶터의 모습으로 바뀌는지에 대한 과정일 것입니다.
JELoM의 Tistory 블로그는 '쉽고 유익한 역사보존'을 주제로 독자들과 열린 소통을 지향합니다. 역사(history), 문화 (culture), 환경 (environment)을 주제로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각 나라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 도시에서 오래된 것들이 가지는 오늘의 의미와 미래를 위한 가치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역사보존 (Historic Preservation) > 도시재생 (Urban Regener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플 스토어(Apple Store)의 디자인 전략과 역사보존의 상승효과 (1) | 2020.03.12 |
---|---|
복제와 재현의 시대에 ‘역사’가 소비되는 방식 (Part I)- 중국 산자이(Shanzhai, 山寨) 문화의 진화 (0) | 2020.03.03 |
'비밀의 도시'를 브랜딩 하다-원자폭탄의 고향 테네시주 오크리지(Part-2) (0) | 2020.02.22 |
'비밀의 도시'를 브랜딩 하다.-원자폭탄의 고향 테네시주 오크리지(Part-1) (0) | 2020.02.22 |
신성한 공간(空間)에서 세속적 장소(場所)로-공실 된 교회의 불편한 변신에 대한 몇 가지 제안 (0) | 2020.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