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asy Coexistence between Historic Landmarking and Urban Gentrification
목포의 근대역사를 간직한 서산, 온금지구의 모습, Image from https://news.sbs.co.kr/
2019년 초 대한민국은 한 여성 정치인의 지방 소재 역사지구에 있는 건물들을 매입했다는 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습니다. 사건의 요지는 “문화재청을 감시하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었던 국회의원이 문화재 지정 결정 이전에 가족과 보좌관 등 주변 인물을 동원하여 건물을 매입했다 (SBS 1월 15일 자 뉴스)”는 것이었는데 대다수의 언론에서는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하여 보도했고, 이것이 ‘부동산 투기냐 문화재 보호냐’를 두고 여전히 법정에서 논쟁 중입니다. ‘역사지구 지정’과 ‘부동산 투기’-자칫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주제는 의외로 미국 대도시에 위치한 역사/문화 보존 지구라면 어디에서나 발생하고 있는 소위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현상에서 등장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마땅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역사 보존학의 어려운 문제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은 영국의 사회학자인 루스 글라스 (Ruth Glass)가 1964년 UCL 도시연구 센터 (The Center for Urban Studies at UCL)에서 발행한 학술저서인 “London: Aspects of Change”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입니다. 글라스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보헤미안 가구들이 영국의 노팅힐 (Notting Hill)과 이슬링턴 (Islington) 지역으로 이주 후 기존 주택들을 수리하고 개조하는 과정에서 원래 거주하고 있던 노동자 계층 (Blue-collar)이 타 지역으로 밀려나게 되는 현상을 분석하여 아래와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합니다.
“One by one, many of theworking class quartersof London have beeninvaded by the middle classes…Once this process of ‘gentrification’ starts in a district it goes on rapidly until all or most of the original working class occupiers aredisplacedand the wholesocial character of the district is changed.”
“런던의 노동자 계층들의 거주지가 차츰 중산층에 의해 장악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 지역이든 이 같은 ‘젠트리피케이션’ 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원 주민인 노동자 계층의 전체 주민 혹은 대부분이 (중산층에 의해) 대체되고 해당 지역의 사회적 특성이 완전히 바뀌게 될 때까지 급속도로 퍼져갑니다.”
미국의 역사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최근 사례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미국 중부 시카고에 위치한 필센 (Pilsen) 지역은 1840년대 아일랜드 계 노동자들을 필두로 독일,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이탤리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과 이후 유입된 멕시코계 노동자 계층이 모여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전형적인 중산층 지역입니다.
1929년 지질 조사 보고서에서 보이는 필센 지구, Image from 1929, U.S. Geological Survey
1951년 필센거리 풍경, Image from the Photo cropped from the original, by Joe+Jeanette Archie [ CC BY 2.0 ], via Flickr
대략 한 세기 이후인 1960년부터 체코와 폴란드 계 유럽 이민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하고 이후 멕시코 계 이민자들의 급격한 유입으로 필센은 1990년대에 이르러 미 중부에서 가장 큰 규모의 멕시칸 이민 공동체 (Mexican American Community)이자 히스패닉 문화를 상징하는 도시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필센 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와 물가 덕분에 꾸준히 인구가 유입되고 다양한 제과점들과 타코 바들이 성행했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아트 갤러리와 음악 가게들이 앞다투어 문을 열게 됩니다. 지역 경제의 호황과 다양한 문화가 자리 잡게 되면서 필슨은 2018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12 지역’ 중 한 곳으로 선정되게 됩니다. (최근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서울의 성수동도 "서울의 브루클린 (Brooklyn of Seoul)"이라는 별칭과 함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필센 지역의 레스토랑 밀집 거리, Image from http://previewchicago.com
"Featuring streets lined with hip galleries and walls decorated with colorful murals dating from the 1970s, the Pilsen neighborhood on Chicago’s Lower West Side is a nest of cutting-edge culture and art,” says Biggs Bradley. “It’s been fostered by successive waves of Eastern European and Mexican immigrants, in addition to local artists and students, who have molded this fascinating area over the past century and a half. At theNational Museum of Mexican Art, the 10,000-piece collection showcases the work of Mexican and Mexican-American artists. And there are a growing number of performance venues, art studios and trendy bars like the popularPunch House."
"시카고 로워 웨스트사이드에 위치한 필센 지역은 1970년대에 조성된 현란한 벽화들로 장식된 벽들과 힙한 갤러리가 줄지어 서 있는 거리가 있는 유행을 이끄는 첨단 문화와 예술의 요람"으로 소개하고 있는 포브스 지의 영문기사. (Source from https://www.forbes.com)
필센 지역의 활성화된 거리 문화는 초기 정착한 유럽 이민자들, 이후 유입된 멕시코 계 이민자들, 저소득 예술가들의 활동에 힘입어 부흥했으며, 이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며 유행에 민감한 젊은 유피 (yuppi)들과 문화다양성을 선호하는 부유한 중산층 인구의 유입을 가속화했고, 이런 추세는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불러오게 됩니다. 20,000불정도면구입할수있었던주택의가격이현재는20배가넘는800,000불을호가하는그야말로부동산거품이일어나기시작했던것입니다.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부동산 가격은 주택세 (housing tax)와 상가 임대료의 동반 상승을 가져왔습니다. 가령1,500달러정도부과되던주택세의경우꾸준히증가하여2009년에 4,000달러로 260퍼센트로증가했습니다.
예전의 소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물가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건물세는 보다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바로 원 주민들의 이탈과 새 주민의 유입입니다. 2006년 시카고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실시한 연구보고서에따르면2000년이후대략10,300명의히스패닉계주민들이치솟는물가및임대료상승을버티지못하고시카고의남서부지역으로이주했고, 동일기간백인인구는22퍼센트(3,587명에서4,385명으로) 증가했습니다.
필센지역에 조성된 벽화들, Images from https://interactive.wttw.com/my-neighborhood/pilsen/murals
오랜 역사공동체였던 필센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는 오랜 기간 지역 주민 센터였던 카자 아즈란 (Caza Atlan)이 개발업자에 의해 상업용 콘도로 부지로 매각된 사건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주민 센터 건물 벽 곳곳에 그려져 있던 오래된 벽화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상징했던 벽화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대신 현대식 건물들이 그 자리에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다른 도시개발사업 (자전거-보행 전용도로 건설) 이 완성되는 몇 년 후에는 부동산 가격의 추가 폭등과 히스패닉 이민 문화로 대변되는 지역의 정체성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점은 주민들이 주도가 되어 여론을 조성하고 지역 미디어에서 필슨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population displacement 또는 gentrification”에 대한 이슈를 다루기 시작하고 있으며, 시카고 시 정부가 늦게나마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건물세는 세입자가 건물주와 계약한 임대료를 기준으로 세율이 책정되기 때문에 상승한 건물세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세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됩니다. 원 주민들에게 치솟는 임대료, 주택세, 동반 상승하는 지역 물가, 과도한 상업화, 기존 생활환경의 변화는 이주라는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원인이 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역 구성원의 교체 현상 (population displacement)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지역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던 역사-문화 정체성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필센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저지와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주민자치협의회와 시 당국의 다양한 노력은 현재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 시카고 정부는 ARO (Affordable Requirement Ordinance)라는 제도를 통해 개발업자들이 대규모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전제 건설 가구수의 10퍼센트를 저소득층을 위한 가구로 개발할 것을 입법화했고 만약 개발업자들이 이 제도에 자발적 참여를 거부할 경우(opt out) 저소득 가구 수에 상응하는 (필슨지역의 경우는 20퍼센트로더높게책정. 예를들면1000가구프로젝트의경우200가구는저소득자를위한주택으로조성해야함) 180,000불을 시에 예치금으로 납부하도록 하여 시 당국이 조성하는 저소득층 가구 건설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시카고 필슨 지역의 사례를 통해 21세기 도시개발과 역사보존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랜드 마킹 (Landmarking, 역사 건물을 등록하거나 역사지구를 선정하는 행위)을 통해 오래된 지역을 보존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오히려 부동산 가격 거품을 조장해서 원주민의 이주를 가속화시키고 지역 정체성이 훼손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이 과정에서 하나둘씩 중심지역의 건물과 인근 부지를 매입하고 내셔널 체인 스토어 (national chain)와 프랜차이즈 식당을 개업하는 개발업자들. 21세기 지속 가능한 지역 사회 개발을 위해 역사보존이 지향해야 할 이론적 가치와 실천적 전략은 무엇일까요? 역사도시를 재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성장과 문화적 지속성 간에 조화로운 공생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무쪼록 성장지향의 계획이 아닌 전체적인 보존 계획 (a holistic preservation plan, not a growth plan)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정부, 기업, 주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최선의 모델을 찾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JELoM의 Tistory 블로그는 '쉽고 유익한 역사보존'을 주제로 독자들과 열린 소통을 지향합니다. 역사(history), 문화 (culture), 환경 (environment)을 주제로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각 나라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 도시에서 오래된 것들이 가지는 오늘의 의미와 미래를 위한 가치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